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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몸내가알아서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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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를 여는 생각

‘외모 지상주의’ 반대한다면, 남의 살을 품평하지 말자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등록 : 2013.12.08 20:17 수정 : 2013.12.09 13:54

뚱뚱해서죄송합니까? 한 국 여 성 민 우 회 지 음 후 마 니 타 스 펴 냄

옷 사이로 삐져 나온 살을 바라보며 누군가 “ 임 신 했 냐 ” 고 물어올 때, 수치심과 함께 몰려오는 기분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내 몸을 훑어보는 그의 시선도 불쾌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은 “ 나 도 뚱뚱한 내가 싫다”는 마음일 것이다. 텔레비전에는 매일 ‘바비 인형’ 몸매의 연예인이 나오고 가족부터 친구, 직장 동료까지 “살 좀 빼라”고 타박한다. 한국 여성의 95%가 “나는 뚱뚱하다”고 여긴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는 ‘ 살 ’ 에 관한 이런 ‘ 억압 ’ 이 어디부터 시작됐는지를 여성 20 명의 인터뷰를 통해 풀어나간다. “‘임신했냐는 말을 많이 듣다보니 배를 가리려고 헐렁한 옷을 사게 됐어요.”(38 살 바리스타) “

결혼한다니까 드레스 입으려면 5 ㎏은 빼야 한다는 거예요.”(29 살 여성단체 활동가) “엄마는 남들에게 늘 딸자식이 못났다고 광고를 하며 선수를 쳤어요. ”(여경 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 활동가) 책에 나오는 사례들을 읽다보면 다들 비슷한 말을 듣고 좌절해왔다는 사실이 ‘웃기면서도 슬퍼진’다. ‘살’에 대한 스트레스의 근원지로 책은 가족과 사회, 양 갈래를 되짚는다. ‘ 가족, 내 몸의 감시자가 되다’라는 제목의 1 장에서는 “부모가 갖는 몸에 대한 불안이 대물림된다”고 설명한다. 고도비만 어머니 밑에서 늘 ‘큰 몸’ 에 대한 죄책감을 학습하며 자란 한 여성은 성형외과의 전신지방흡입수술 ‘ 비포-애프터’(전-후) 모델로 지원해 뽑혔다. 신생아실 간호사조차 화장 안 했다고 타박을 듣고 살이 찐 승무원에게는 회사가 ‘다이어트 휴직’을 권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성형외과, 비만클리닉 등 온갖 외모관리 분야가 상업화된 현대 소비사회는 여성의 날씬함과 섹시함을 아름다움의 잣대로 더욱 강화시켰다. 외모에 따른 우대와 차별이 가정, 학교, 직장, 미디어 등 일상에 만연해지며 사람들은 일반적인 인사, 안부, 관심의 표현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외모 평가를 건넨다. 특히 긍정적인 외모평가는 ‘칭찬’으로 간주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말까지 포함해 이런 품평들이 사실은 ‘외모 계급사회’를 더 강화한다고 책은 지적한다. 그렇기에 “외모 지상주의에 신음하는 여성 각자의 경험을 나누고 자기 해석에 귀기울이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책에는 ‘살에 대해 말하지 않기’ 캠페인 스티커가 들어 있다. 지금 여성의 몸매에 대해 말하고 싶어 입이 간질간질한 이들에게 건네는 한마디. “내 몸, 내가 알아서 할게!”
한국여성민우회가 인터뷰한 여성들 중 일부는 사진 촬영을 했다. 성형외과의 전신 지방 흡입 수술 ‘비포 애프터’ 모델로 활동했던 25 살 여성도 속옷 차림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등 한가운데 크고 아름답다는 의미로 ‘ 빅 뷰티’라고 썼다. 사진작가 혜영 제공

‘살 스트레스’ 강요하는 가족과 사회
성형외과 ‘비포 애프터’ 모델, 다섯살 때부터 다이어트를 한 20 대 여성, 살이 찐 뒤 “ 임신했냐”는 말을 들은 30 대 여성, 7 년 동안 식이 장애를 앓고 있는 대학생, 일터에서 외모 압박을 받는 승무원·간호사…. 여성들은 나이와 직업, 외모와 관계없이 각자의 ‘살 지옥’ 안에 살고 있다.

책의 제목은 한 여성의 경험담에서 나왔다. “ 초 등 학 교 때 어머니랑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중간에 어떤 아저씨가 타는 순간 무게가 다 차서 ‘삐’ 소리가 났어요. 갑자기 어머니가 완전 소심하게 ‘죄송합니다’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엄마한테 ‘뭐가 죄송해, 우리가 먼저 탄 건데’ 하니까 어머니가 ‘내가 뚱뚱해서 그래’ 그러시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이제 25 살 대학생인 그의 어머니는 고도비만이었다. 요리사였던 어머니는 면접을 보러 가서도 모욕을 당하기 일쑤였고 자기 몸에 대한 혐오를 고스란히 딸에게 물려주었다. 딸이 한 성형외과의 전신 지방 흡입 수술 ‘ 비 포 애프터(성형 전후) ’ 모델로 선발됐다고 했을 때도 어머니는 수술의 안전성 따위는 묻지 않고 단번에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후마니타스 펴냄)는 한국여성민우회(민우회) 건강팀이 해온 오랜 작업의 결과물이다. 민우회는 2002 년께 성교육, 초경 캠프 등을 통해 10 대들을 만나 ‘ 외 모 지상주의’가 청소년의 건강권을 침해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2003 년부터 매체 모니터링과 불법 성형광고 고발에 나섰다. 2004 년 ‘ 노 (No) 다이어트 노(No) 성형’ 캠페인, 2011 년에는 ‘ 성 형 OTL(좌절을 뜻하는 이모티콘) ’ 캠페인을 진행했다. 올해 ‘ 다 르 니 까 아름답다’ 캠페인을 시작하며 직접적인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 현실을 바꿔보고자 여성 20 명을 인터뷰해 책을 펴냈다. 책에는 성형외과 ‘ 비 포 애프터’ 모델인 25 살 대학생을 포함해 다섯살 때부터 엄마의 권유로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는 20 대 여성, 언니들의 일상적인 외모 코멘트와 다이어트 압박에 괴로워하는 20 대 여성, 살이 찐 뒤 주변에서 “임신했냐”는 말을 너무도 많이 해 힘들다는 30 대 여성, 일하며 외모 압박을 받고 있다는 승무원·간호사·화장품판매원, 학점과 영어 점수는 준비됐지만 외모 때문에 걱정이라는 취업준비생, 7 년 동안 거식증과 폭식증 등 식이 장애를 앓고 있는 대학생 등이 등장한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살’ 이야기를 하며 민우회는 서두르거나 가르치려 하지 않고 모든 단계의 고민을 솔직히 밝힌다. 그중 첫째가 “누가 이

운동의 당사자인가”이다. 민우회는 “이 활동이 못생긴 사람들의 피해 의식과 열등감에 기인한 것이라는 시선”에 대해 물은 기자와 마르고 키가 큰 편인 한 활동가에게 “본인이 이런 활동을 한다는 건 좀 어폐가 있지 않냐”고 물은 한 플러스 사이즈 모델의 사례를 언급하며 “‘못생긴’ 사람도 ‘예쁜’ 사람도 안 된다면 누가 이 활동의 당사자일까?”라고 되물었다. 그만큼 편견은 깊고 연대는 쉽지 않다. 하지만 사례를 읽다 보면 이런 고민은 의미가 없다. “ 사 춘 기 시절, 나는 뚱뚱하고 우울한 소녀였다. 뚱뚱하다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이 싫어서 자주 구석진 곳에 숨어 있었다. 누가 뚱보라고 놀리면 집으로 돌아와 어두운 곳에서 책을 읽었다.” 책이 인용한 시인 허수경씨의 말이 보여주듯 여성들은 나이와 직업, 외모와 관계없이 각자의 ‘살 지옥’ 안에 살고 있다. 일상에서 ‘나의 몸매’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과 맞닥뜨렸을 때 제대로 대응하기란 쉽지 않다. 기분은 매우 나쁜데도 ‘ 성 희 롱 ’ 이 라 항의하자니 모호하고 그냥 웃고 넘기자니 답답할 때가 많다. 책은 여성의 몸에 대한 이 갑갑한 압박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차근히 추적한다. 책에 들어 있는 ‘살에 대해 말하지 않기’ 스티커 성 형 외 과 지 방 흡 입 수 술 모 델 등 상 처 받 은 여 성 20 명 의 살 이 야 기 몸 에 대 한 부 모 의 왜 곡 된 인 식 은 자 녀 에 게 대 물 림 된 다 . 성 을 강 조 하 는 소 비 문 화 와 맞 물 려 외 모 기 준 이 섹 시 함 과 동 일 시 됐 다 .‘ 내 몸 을 사 랑 하 는 40 내 놓 는 다 가 지 방 법 참 가 자 들 이 뽑 은 대 안 을

“결국 몸에 대한 왜곡된 인식의 출발은 상당 부분 부모에게 있다”고 책은 말한다. 책 속의 여성들도 저마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 안에서 받아온 상처를 가장 먼저, 제일 아프게 기억해냈다. “우연히 엄마 일기를 봤는데 ‘송미가 다시 살이 찌기 시작해서 큰일이다’고 적혀 있었어요. 초등학교 2 학년이었던 저는 엄마가 내가 뚱뚱하다고 생각하는구나 하면서 좀 슬펐어요. ” 다섯살 때부터 다이어트를 해왔다는 25 살 여성의 말이다. 책은 “어른들이 갖는 몸에 대한

이해, 기대, 두려움이 아이에게 투사되고 그것이 신체에 대한 아이의 인식에 큰 영향을 끼친다”며 “ 부 모 가 느끼는 몸에 대한 불안은 대물림된다”고 설명한다. 부모가 괜히 그럴 리 없다. ‘외모 지상주의’ 사회의 모습을 들춰보면 부모의 불안이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된다. “초등학교 때 제가 좋아하던 애가 어느 날 제 밥 먹는 모습을 보더니 대뜸 ‘너는 살을 다 키로 만들면 2m 도 넘을 거야’ 라고 하더라고요.”(25 살 취업준비생)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며 여성들은 외모, 특히 살 때문에 숱한 좌절을 경험한다. “의사가 ‘아무개 간호사, 살 좀 빼’라고 대놓고 얘기하는 경우도 있어요.”(23 살 간호사), “회사가 살을 많이 뺀 직원에게 ‘베스트 슬리머상’을 주고 얼마 전에는 승무원 다섯명에게 살이 많이 쪘다고 휴직해서 살 빼고 나오라고도 했어요. ” (39 살 항공사 승무원) 노동자의 외모까지 관리하려 드는 회사의 정책은 더 많은 이들을 ‘ 살빼기’에 몰입하게 한다. 이 책의 보론을 쓴 여성학자 김고연주씨는 “외모 관리는 페미니즘의 어려운 문제 중 하나”라고 고백한다. “여성들의 성적 자기 결정권, 자신감과 자존감, 연대를 지향해온 페미니즘은 남성의 시선에 맞춰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가꿔야 할 대상으로 인지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해왔다. 하지만 외모 관리가 성을 강조하는 소비문화와 맞물리면서,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 외모에 대한 기준이 섹시함과 동일시되고 있다. 에로티시즘은 여성들의 중요한 자아 정체성이기에 현실 개입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여성들이 소비문화에 이용당하고 있다거나 여전히 남성의 시선만을 체화하고 있다고 진단하기에 현실은 매우 복잡하고 모순적이다. 김고연주씨는 “때문에 페미니즘은 계속해서 여성들의 생각과 자기 해석을 경청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성들이 외모 관리에 몰입하는 현실뿐만 아니라 외모 지상주의 때문에 거의 모든 여성(그리고 남성)이 괴로움을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해 드러내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미국에서는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2009 년부터 ‘살에 대해 말하지 않기’ (End Fat Talk) 캠페인이 시작됐다. 영국에는 패션모델 몸의 다양성을 옹호하는 ‘다양한 모델들’이란 이름의 엔지오가 활동 중이며 바비 인형이나 모델들의 몸매 비율이 비현실적임을 알리는 다양한 캠페인과 예술 작업도 진행됐다. 책은 마지막 장 ‘내 몸을 사랑하는 40 가지 방법’을 통해 참가자들이 직접 뽑은 대안을 내놓는다. 명절 때마다 ‘살 얘기’로 상처를 주는 삼촌에게 “

여자들에게 살이 쪘다, 빠졌다 이런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는 거 사실 굉장히 무례하고 불쾌한 일이야”라고 문자를 보내는 방법부터 맨손으로 비누칠하고 주무르며 내 몸을 더 사랑해주기까지 다양하다. 책에 들어 있는 ‘살에 대해 말하지 않기’ 스티커를 ‘몸매 품평’을 늘어놓는 사람의 입에 붙여주는 것도 방법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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